매체를 넘어선 매체: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매체’ 담론 — 김지훈

『북해에서의 항해: 포스트-매체 조건 시대의 미술』

2022.5.21 정지영 발제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미국 미술 비평가이자 이론가로 미술을 철학 개념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미술이 그저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설명이 필요한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 모더니즘 시기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을 비판하려고 했던 크라우스는 1976년 미술이론지 〈옥토버〉를 창간했다. 〈옥토버〉에서 크라우스는 쿠니 대학원에서 만난 동료 더글라스 크림프와 함께 이 시대의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강력하게 제시하여 당시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품이 만들어지고 놓이는 장소가 작품의 의미를 형성한다는 장소특정성site-specitify, 미술이 사회 속에 존재하면서 제도를 다시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도 비판 미술 등 메타적 관점에서 비평 활동을 전개했다.

필자(김지훈)는 매체특정성 개념의 기원과 ‘포스트-매체’ 담론이 제기된 시대적 맥락을 소개하고 이 개념의 두가지 모순되는 속성에 주목한다. 그는 『북해에서의 항해: 포스트-매체 조건 시대의 미술』(이하 『북해』)의 핵심이 이 두가지 모순되는 속성이라 주장한다. ‘포스트-매체’ 조건이란 첫째, 매체특정성이 무효화되는 1960년대 이후 당시 현대미술계 상황을 가리킨다.(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퍼포먼스, 페미니즘을 기점으로 현대미술에서 1960년대를 전후하는 시기 구분이 자주 사용된다.) 둘째, 그간 사용되던 전통적 의미와 다른 매체와 매체특정성 개념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필자는 먼저 영화/비디오 이후 디지털 매체가 등장하면서 ‘포스트-매체’ 개념이 도출되는 맥락을 살펴본다(특정성을 넘어선 특정성). 다음으로 크라우스가 쇠퇴한 기술로부터 가능성을 찾는 벤야민의 사유를 통해 수정된 매체 개념을 형성함을 밝힌다(벤야민적 가능성의 매체). 이때 크라우스가 말하는 ‘매체’는 medium으로, 소통을 매개하는 media와 차이가 있다. 크라우스는 디지털 미디어 이후의 기술을 매체특정성을 사라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 필자는 크라우스의 ‘포스트-매체post-medium’와 2000년대 이후 ‘포스트-미디어post-media’ 담론을 대비하고 전자가 후자를 포용할 때 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아래는 모두 필자 김지훈이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글을 정리하고 재구성한 것을 토대로 하며 문장의 간결성을 위해 ‘필자는 ~설명한다.’를 생략했습니다

1장

1-1 모더니즘적 매체특정성

매체특정성medium specificity은 1776년 레싱이 『라오콘』에서 시와 회화/조각을 각각 시간예술과 공간예술로 구분하며 만든 개념이다. 매체특정성은 근대미학의 중요한 전제로서 예술을 장르별로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매체특정성에 대해 노엘 캐롤Noel Carroll이 정리한 바는 다음과 같다.

  1. 1. 매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로, 그 자체가 어떤 작용을 하여 효과를 만들어낸다.
  2. 2. 매체의 본질은 물질이다.
  3. 3. 매체는 자신에게 담기는 콘텐츠의 표현과 탐구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마이클 프리드가 모더니즘 미술 담론에서 보다 공고히했다. 특히 그린버그는 매체 특정성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모더니즘 회화에 캔버스의 2차원 평면성과 물감의 물성을 강조한다. 그는 모더니즘 추상회화에서 매체에 대한 탐구가 다른 예술 장르와 섞이지 않고 회화 만이 가진 순수성을 확립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매체특정성은 영화에서도 영화만이 가능한 것, 영화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영화의 매체특정성은 카메라의 기록에 철저히 입각한 리얼리즘이나 그것을 넘어서는 시점과 표현을 찾는 형식주의로 전개되었다.

1-2 매체의 종언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확산에 따라 매체특정성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현대미술의(여기서 현대미술은 아마 Modern Art에서 Contemporary Art의 성질을 가진 예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된다. 미술사에서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의 기점은 아직까지도 명확하지 않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모습이 매체의 물질적, 기술적 특성과는 관계없이 변화했다고 말한다. 다음은 디지털 미디어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하나의 이미지는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하나의 맥락에서 다른 맥락으로 영구히 순환된다. 일정 길이의 영화 푸티지는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도 있고, 디지털 형태로 변환되어 누군가의 웹사이트상에 나타날 수도 있고, (…) 미술관 설치 작품의 맥락 속에 놓일 수도 있다.”(103)
앤 프리드버그 또한 “당신이 각 스크린에서 보게 되는 이미지들의 유형은 그 매체 기반 특정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에서 매체 특정성의 종언은 ‘영화의 죽음’이나 필름과 극장 이후의 ‘포스트 시네마’ 담론으로 이어진다.

2장

2-1 ‘포스트 매체’ 담론의 첫번째 계기 — 설치 작품의 확산

크라우스가 보기에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의 〈현대미술관 독수리부〉는 전통 매체 개념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매체 개념을 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독수리를 주제어로 삼고 이와 관련된 그림, 박제 동물, 포스터, 신문 기사, 과학 도판을 수집해 가상의 미술관을 상정하여 전시한 것이다. 이는 예술작품의 장르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물에 질서를 부여해 작품으로 여기도록 하는 근대 미술관 제도를 폭로한다. 이제 매체별로 분류되어 각각의 장르로 존재하던 개별 예술작품은 혼합매체 설치 작품으로 변화한다. 혼합매체 설치 작품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포스트-매체’ 조건의 첫번째 계기가 된다.(106)

크라우스는 매체가 단일한 물질이나 기법으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용어들을 모두 적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 매체로 필름(영화)을 든다.

지지 구조supporting structure / 물질적ˑ기술적 지지체material or techni-cal support
: 물질과 기술이 매체를 규정하는 데 더이상 결정적인 요소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러나 크라우스는 전통 매체 개념을 아예 버리지는 않는다. ⎈ 여기서 이 지지 구조와 물질적ˑ기술적 지지체는 어떻게 다른 개념일까요?
집적 조건aggregrative condition
: 매체는 다양한 물질적, 비물질적 요소들의 복합체다. 매체는 서로 다른 요소들을 모아놓은 상태이다.
변별적 특정성differential specificity
: 매체 내 구성요소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그 효과에는 (매체끼리)변별할 수 있는 특정한 성질이 있다. ⎈ 크라우스가 여전히 매체특정성을 못 잃고 있음이 용어에서 드러나네요.

2-2 take1, 영화를 볼 때 모든 것으로서 영화‘들’

“장치라는 관념은 필름의 매체 또는 지지체가 이미지들의 셀룰로이드 스트립도, 그것을 촬영하는 카메라도, 이 이미지들에 운동의 활기를 불어넣는 영사기도, 그것들을 스크린에 전달하는 영사기의 광선도, 스크린 자체도 아니라는 점을 뜻한다. 대신 필름의 매체 또는 지지체는 이들 모두가 합쳐진 것으로, 여기에는 관객 뒤편의 빛의 원천과 그들의 눈 앞에 영사되는 이미지 사이에 사로잡힌 관객의 위치도 포함된다”(32)
- 로잘린드 크라우스
“(영화의) 특정성은 테크놀로지나 기술-감각성techno-sensoriality을 통해서가 아니라 코드들, 그것들의 이 특별한 조합을 통해 정의된다.”
- 스티븐 히스

크라우스는 1960-70년대 영화계 장치이론apparatus theory으로 설명되는 영미권 구조영화structural film를 예로 든다. 구조영화는 영화 속에 섞여 있는 여러 요소들을 따로 나누는 한편, 그 요소들이 변화하고 재조합되면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보여지고 경험됨을 느끼게 해준다.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파장Wavelength〉은 영화가 이미 완성된 대상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영상이 서로에게 의존하여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샤리츠Paul Jeffrey Sharits의 플리커 영화Ray Gun Virus는 일루젼에 기원을 둔 영화 이미지로 필름 스트랩의 기본 단위인 프레임과 프레임끼리의 간격을 드러낸다. 맥콜Anthony McCall의 〈원뿔을 그리는 선Line Describing a Cone〉도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이미지 대신 프로젝터 빛으로 영화를 체험하게 한다.

장치이론apparatus theory:

“일반적으로 영화이론에서 장치Apparatus란 관객, 텍스트, 기술과 관련되며, 장치이론은 관람자의 관람행위에 미치는 영화의 기술적, 물리적 특성의 영향을 탐구한다. 그렇다고 사회적 기제로서 영화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기술적 혁신에 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영화기계들, 필름, 조명, 사운드, 레코딩시스템, 카메라, 분장, 의상, 편집기, 영사기 이상을 말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장치들이 영화경험을 현실 삶처럼 느끼게 하는 환영적인 영화관람을 만들며 헐리웃 영화와 레저를 연결하고 있다. 보드리의 영화장치에 대한 분석은 장치가 갖는 두 가지 의미, 즉 한편으로 필름제작과 영사라는 실질적인 하드웨어, 관객을 영화로 안내하는 제도들을, 다른 한편 관객과 영화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심리적 기제에 대한 분석이다. 이 두 가지 의미의 장치는 서로 다르면서도 동일한 효과를 수행하며 보드리는 이들 장치에 대한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와 이데올로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적합한 정신분석학적 지형의 비밀을 폭로한다.”
— 연희원. (2003). 현상학적 영화이론 ―J. L. 보드리의 영화장치를 중심으로―. 현상학과 현대철학 , 21, 15-388.

브로타스의 영화 〈북해에서의 항해A Voyage on the North Sea〉는 근대적 매체특정성의 마침표처럼 기능하는 작품이다. 19세기 그림책 장면을 정지된 필름 프레임 단위로 보여주어 영화 매체가 정지된 프레임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근원을 밝힌다.(109) 필자는 크라우스의 글에서 비디오(media)를 필름(medium)과 대립하는 매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선행연구들(정연심, 최종철)이 〈북해〉를 비디오 작품으로 전달한 것을 치명적 오류로 본다.(108)

2-3 ‘포스트 매체’ 담론의 첫번째 계기 — 미디어의 등장

디지털 미디어-비디오-가 등장하면서 포스트-매체 조건은 두 번째 계기를 맞이한다. ‘구성적 이질성constitutive heterogeneity’은 크라우스가 미디어학자 사무엘 베버로부터 인용한 개념이다. 구성적 이질성이란 한가지 매체의 속성이 서로 다른 ‘과정’으로 구성되어있음을 의미한다. 텔레비전, 비디오, 라디오와 같은 매체는 사람이 그것을 사용해 제작하고 전송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연결되어 효과를 만들어낸다.(41) 텔레커뮤니케이션 미디어Tele communication media는 매체의 속성이 서로 다른 지각 과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존 예술(전통적 의미에서 회화, 조각)에서 사용되던 매체(캔버스, 돌 등)와 전혀 다르다. 초기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만이 가능한 것을 탐구하면서 모더니즘적 매체특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구성적 이질성’ 또한 비디오 아트의 매체특정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 비디오 아트는 다른 예술 개념이나 장르와 결합하면서 더 이상 비디오만이 가능한 것을 탐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기 작품들은 비디오가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 프로세싱 비디오, 비디오 퍼포먼스, 비디오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융합은 비디오의 매체특정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게 된다.(110)

2-4 대화로서 매체

크라우스는 카벨의 자동기법automatism을 끌어들여 자신의 주장이 그린버그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카벨이 말하는 자동기법은 매체의 전통적 의미인 물질과 기술에 예술가가 작품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원리인 비물질적 질서(규칙)와 관습이 포함한다. 한 디자이너가 포스터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자동기법으로서 매체는 마우스와 키보드, 어도비 프로그램 속 대지와 더불어 디자이너가 주제에 따라 화면을 어떻게 나누고 배치할지 생각하고 만드는 규칙, 자주 쓰는 메뉴는 어떤 것이고 어떤 순간에 사용하는지, 그러한 습관이 어디에서 누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등을 함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카벨은 자동기법에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에 따르면, 물질과 비물질적인 것이 함께 있는 자동기법은 개별 예술가가 목표로 한 것과 관계없는 목적과 활용을 계속되게 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한계에 ‘응답하여’ 예술가는 매체를 위한 새로운 스타일과 목적을 만들어낸다. 크라우스에게 매체는 자동기법과 표현형식의 변증법적 대화다. 예술가가 목적에 따라 어떤 매체를 선택해 만들기 시작한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물질과 비물질이 융합된 매체에 예술가가 나름의 질서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매체가 가진 고유한 성질이 작품의 스타일(형식)에 영향을 주고, 이 형식은 다시 작가의 목적에 따라 매체가 가진 성질에 영향을 준다. 크라우스는 매체를 이렇게 서로 영향을 미치며 대화하는 관계로 보았다.(113)

자동기법automatism:

“스텐리 카벨에 따르면, 예술은 세계의 현시顯示이며 이를 통해 세 계와 인간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의 산물인 것인데, 그는 이러한 노력의 정점을 사진의 “자동성automatism”에 있다고 본다. 카벨은 나아가, 사진의 자동성에 대한 고찰을 예술의 책무와 연관시킨다. 즉, 각각의 예술들은 스스로의 규칙의 자동성에 대한 복종 속 에서 그것이 재현코자하는 세계 경험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규칙에 복종한다는 것은 개별 예술의 생산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 예술의 본질the idea of art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진이 스스로의 기술적 규칙에 충실할 때, 그것의 본성인 신뢰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시나 무용, 음악, 회화 등도 각자의 규칙에 충실할 때 비로소 그 본질을 드러낸다. 모던 회화는 규칙의 자동성 혹은 선험성을 무시하고, 그 규칙을 각 매체의 물리적 기반 속에서, 그리고 주관적 의식의 투영을 통해 규정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카벨에 따르면, 모더니즘의 이러한 태도와 그 결과로서의 예술적 환원은 스스로의 미학적 태도를 규정하고 동시에 배반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오토마티즘으로서의 매체란 1. 스스로를 자신의 규칙 속에서 재생산 해내는 것이며, 2. 규칙의 현시로서 예술작품에 대한 경험을 담보로하기 때문이다.”
— 최종철, 로잘린드 크라우스 포스트 미디엄 이론의 이중성에 관한 변증적 고찰. 미학예술학연구 46(0), 2016, p.219 각주20
“스탠리 카벨은 고전 영화의 작동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를 “오토마티즘”이라고 지칭했는데, 그것은 자연 언어와 유사하지만 단순한 기호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신비롭게 자명한 방식으로 소통되는 천사의 언어처럼 묘사된다.”
— 윤원화, 시청각적인 것의 은하계 가장자리에서: 읽고 쓰는 일의 재검토, 2019

2-5 특정성을 넘어선 특정성 — 매체의 재창안

‘매체의 재창안reinventing the medium’은 매체 개념의 재발명이다. 크라우스는 전통적 매체특정성 개념을 버리지 않고 이를 통해 매체를 다시 발명하고자 한다. 크리우스가 보기에 콜먼James Coleman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작품은 매체의 물질적, 기법적 특정성을 유지하면서도 모더니즘에서 구분했던 예술 장르와 형식을 초월하여 표현 방식을 찾았다. 콜먼의 작품은 영화의 영사방식을 사용하면서도 표준 영사 방식이 아니라 사진의 정지와 영화의 운동을 함께 보여주었다. 켄트리지의 목탄 애니메이션은 전통적 드로잉을 넘어 애니메이션 장르와 결합해 그 역사 안에 자리를 잡는다. 매체의 재창안은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발전된다.

모든 내용을 맹신할 수는 없지만 ‘포스트-미디엄’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만한 블로그입니다. 결론 부분이 흥미로워 가져왔습니다.

“설치 미술은 천박한 미술의 스펙터클이며 키치라고 말하는 것은 통해 알 수 있듯이 크라우스는 설치 미술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의미하는 설치 미술은 자본과 결탁한 일회적 혹은 이벤트적인 설치 미술을 뜻한다. 그러나 이미 미술 현장에서는 이미 너무나 널리 그리고 깊이 설치미술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설치 미술은 자신을 도구화 시킬 뿐만 아니라 상품화 하는 것에 어떠한 죄의식이 없다. 또한 현대 미술계에서는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경계가 점차 무뎌지고 디지털 영역이 확대되면서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작품 제작과 상품 제작의 경계의 흐려짐 또한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크라우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히 염려스러운 광경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자포자기 하거나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네트워킹의 활용과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욱 다층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제도와 공간을 활용하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점점 더 빨리 변화되고 있으며 이 변화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크라우스의 이론이 여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역할을 물려주고 자신이 이끌어왔던 20세기 후반의 미술 담론들이 폐기되어 가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 안해숙,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post-medium condition’ 연구 : 안해숙, 블로그, 2015 ⎈ 매체를 다양한 물질과 비물질 조합 상태로 보았던 크라우스가 설치미술을 비판한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크라우스가 비판했던 설치미술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겉만 화려하고 신기한 스펙터클로 기능하는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다른 분들은 디자인의 관점에서 매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시는지 궁금하네요.